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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9:89)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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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일 목요일

∞∞∞ 올바른 헌금은 ? ∞∞∞

요즘 세상은 간음과 음행과 쾌락을 사랑과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소돔과 고모라"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돈과 재산의 소유가 유능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고, 병들고 죄악이 넘치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와 목회자들조차 돈의 위력에 굴복하고 세상을 본받는 비참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탐욕과 쾌락의 풍조는 순수해야 할 하나님의 교회조차 세상의 사업체와 같은 "돈의 노예"가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장로가 되려면 얼마를 내야하고, 권사가 되려면 얼마를 내야하는 것은 공공연한 법이 되었습니다.
서로 세워주고 섬겨야 할 교회안에서 낮아지고 섬기기보다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서로 높임 받기를 원합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교회를 팔고 사는 일은 예사이고, 목사가 돈을 따라 다니고, 목사안수를 받기 위해 "거마비"가 있어야만 하는 상황은 비참하기까지 합니다.
교인 숫자를 "돈"으로 계산하고 교인 숫자만 늘릴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헌신짝 버리듯 무시하는 교회들이 점점 더 늘어만 갑니다.
교인을 많이 끌어 모으고 헌금을 많이 거둘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교회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존중받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헌금을 거두기 위한 들러리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교회 회원들의 헌금인 돈으로 운영되고 선교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돈"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헌금을 드려야 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헌금을 드려야만 훗날 하늘에서도 하나님께서 상과 면류관으로 되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드린 헌금이라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헌금에 대해서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목회자가 돈을 쫓는다면 모든 양들을 잘못 가르치게 됩니다.
헌금을 거두기 위해 잘못 가르친다면 그 책임은 막중할 것입니다.
성도들도 사람인 목회자의 말보다 성경을 믿고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성경에 대한 무지를 목회자의 잘못이라고 변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고정적인 교회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이 "십일조 헌금"입니다.

"십일조" 대해서 첫 번째로 언급하는 부분은 창세기 14:20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키세덱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레위기 27:30-33, 신명기14:22-29에서 땅의 곡식, 과실, 소, 양, 염소의 십분의 일은 주님의 거룩한 것이며, 반드시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십일조를 돈으로 바꾸어 드려도 좋으며, 그 돈으로 소, 양, 포도주, 독주등 무릇 원하는 대로 사서 주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신명기26:12에서는 "십일조"를 레위인, 나그네, 아버지가 없는 사람, 과부들에게 사용하라고 합니다.
이 십일조는 레위인들이 관리하며(대하31:11-13) 창고에 쌓아두기도 합니다.(느12:44,13:5)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지 않았을 때 말라기서3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십일조를 바쳐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7:5-10에서 멜키세덱에게 십일조를 준 것과 율법에 따라 레위인들이 십일조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십일조"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십일조에 대한 명령"을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교리로 받아들여 지켜야 하는가?" 입니다.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이 확실합니다.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한다면 아담과 이브도 "십일조"를 드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는 책입니다.
성경은 더 하거나 빼거나 바꾸지 말고 기록된 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다면 구약 성경에서 "십일조"에 대한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명합니다.
물론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도 레위지파가 아닌 멜키세덱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에 대한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멜키세덱에게 "십일조"를 준 아브라함도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아브라함"이 모두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한다면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이고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입니다.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하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은 성경이 아니냐?고 화를 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구약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 없는 책이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을 그리스도인들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해서 무시해도 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첫째가 "교리"를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책망"도 하고, "바로 잡아주기"도 하며 "의로 교육"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리"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으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을 "책망"할 수 있고, "바로 잡아" 줄 수도 있으며, "의로 교육"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경의 율법대로 지키고 행해야만 하는 "교리"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말씀대로 행하도록 말씀하신 "교리"입니다.
그 말씀으로 신약 성도들을 책망하고 바로 잡고 의로 교육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고 행해야 하는 "교리"는 아닙니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말라기에서 가르치는 "십일조"를 신약 성도들에게 "교리"로 가르치는 것이 옳다면 "십일조"를 가르치는 동일한 성경에서 명령하는 것들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수염을 깍지 말 것이며, 베와 양털을 섞어 짠 옷(혼방)을 입지 말 것이며, 동물을 제물로 드려야 하며, 초실절,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을 지켜야 하며, 돼지고기, 개고기, 고등어, 갈치, 뱀장어, 미꾸라지를 먹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안식일을 지켜야 하며, 안식일에 나무를 하거나, 집안에서 불을 피우면 죽여야 합니다.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거나, 인신매매를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살인하면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매는 매로 갚아야 합니다.
613가지나 되는 모든 율법은 지금도 모두 지켜야 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는 아닙니다.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책망"하고, "바로 잡아"주고, "의로 교육"할 수 있는 유익한 책입니다.
"십일조"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교리"는 아닙니다.
"십일조"와 "헌물"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헌금"을 드려야 하는지 스스로 마음에 정할 수 있도록 "의로 교육"할 뿐입니다.
"십일조"는 신약 교회에 헌금의 기준으로 참고할 수 있지만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교리"는 아닙니다.


∞∞∞ 올바르게 헌금을 드리려면? ∞∞∞

신약 교회의 성도가 지켜야 할 헌금의 원칙은 신약 성경에서 확실하게 명령합니다.

1) 매주일 첫날에 드려야 합니다.(고전16:2)
2)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것을 드려야 합니다.(고전16:2)
3) 미리 모아 두었다가 드려야 합니다.(고전16:2)
4) 먼저 몸을 드려야 합니다.(고후8:5)
5) 있는 대로 받으실 것이며,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십니다.(고후8:12)
6)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드려야 합니다.(고후9:7)
7)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고후9:7)
8) 즐겁게 드려야 합니다.(고후9:7)

매 주 첫날에 드리되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면 -"도둑질, 강도, 사기" - 아무리 많은 돈을 드렸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몸은 드리지 않고 "헌금"만 드리거나, 빚을 내서 드리는 것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신의 형편과 성경의 기준을 살펴서 각각 마음에 정한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너무 많아서 억지로 드리거나 또 너무 적어서 인색하게 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십일조 헌금"을 드려서 부자가 되려고 한다면 헛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드리거나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헛된 헌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해서 법을 지키지 못하고 드려진 헌금도 하나님의 일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규칙"대로 드리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사람에게 칭찬하고 상주시는 불의한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예수님에 대한 무지입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무죄가 아닙니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바르게 드리고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열심히 수고하고 봉사하고 땀흘리고 헌금을 드렸지만 규칙위반으로 드러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충성하고 열심을 다했지만 마귀에게 속은 것이라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슬픈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계속되는 슬픈 사랑 ∞∞∞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과 약혼한 신부입니다.
정결한 마음으로 혼인식을 기다려야 하는 신부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은
신부가 흠도 없고 점도 없이 정결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신부의 마음속에 신랑으로만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오직 신랑의 말씀대로 따르기를 원합니다.

많은 신부들이 신랑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많은 신부들이 신랑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합니다.
많은 신부들이 신랑의 말씀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많은 신부들이 사랑해서는 안될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신부들이 사랑해서는 안될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많은 신부들이 슬픈 사랑의 주인공이 된 줄도 모릅니다.

무지는 변명이 될 수 없고
무지는 무죄가 아니건만
무지한 슬픈 사랑은 언제까지 계속되려는지요?

신랑이 다시 오실 때는 가까워 오건만
사랑해서는 안될 슬픈 사랑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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